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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타이거, 카스트 제도에서 백호의 탄생은 불가능한가

by 무엇이든 읽음 2021.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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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후에도 카스트 제도

먹거나 먹혀버리거나, 화이트타이거

고등학교 때 배웠던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글로 배운 그 나라의 문화 같은 것이었다. 자라서 매체에서 확인하는 실제의 카스트 제도는 글로 배워서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14억에 육박하는 인도인들의 잠재력을 싹부터 짓밟아버리는 그런 사회의 시스템이었다. 내가 회사에서 만나본 인도 사람들의 총명함은 중국, 일본인들의 그것과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민족의 똘똘한 재원들이 카스트제도라는 높은 벽을 넘지도 못하고, 소수의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인도를 이끌어간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인도를 잘 아는 사람들은 100년 후에도 지금과 똑같은 형태의 카스트 제도가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를 극복해내는 것이 인도의 미래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스스로 환경을 극복하는 것은 가능한가

영화는 자수성가한 발람 할와이의 이야기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천민 출신이지만 재능이 있던 발람이 지주인 아쇽을 살해하고, 아쇽의 역할을 해내면서 성공하는 이야기이다. 지주였던 아쇽은 상당한 사업 수완을 보이고, 발람은 그의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지내지만, 결국 아쇽과 아내(핑키)는 발람을 소모품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신분의 한계와 주인인 아쇽의 대접에 현실을 깨달은 발람은 괴로워한다. 핑키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난 후에도 아쇽을 주인으로 잘 모시며 지내던 중, 아쇽이 새로운 운전사를 채용하려는 것을 알게 된 발랄은 그를 살해한다. 아쇽의 돈을 훔쳐 달아난 발람은 스타트업 사업가로 변모하고, 아쇽이 하던 대로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등의 사업수완을 발휘해서 사업가로 승승장구한다. 영화에 인도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닭장'이 나온다. 닭장 속의 닭들은 바로 옆의 닭이 잡혀나가서 눈앞에서 목이 잘려 죽는 장면을 보고서도 밖으로 도망치거나 사람을 공격하지 못한다. 그냥 바들바들 떨면서 차례대로 죽어나갈 뿐이다. 주어진 환경을 바꾸거나 벗어날 수도 없이 남들에게 운명을 맡긴 채 살아간다. 노예신분의 발람이 아쇽과 핑키가 낸 사고를 덮어쓸 뻔했으나 무사히 넘어간 것도 발람이 어떤 행동으로 극복한 것이 아니다. 그는 아쇽 부부가 내민 자백서에 말없이 서명을 했고, 그에게는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목격자가 없어서 그렇게 범인을 찾지 못한 교통사고의 희생자는 고아원의 소녀였고, 그렇기 때문에 목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조사는 종결되었다.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아쇽의 아내 핑키는 평상시에는 카스트 제도를 비판하는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는 하층 계급 출신이지만, 이 사고에서 아쇽이 발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 때는 침묵한다. 

잠들어 있는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하는 사람은 절대 깨울 수 없다

주인이던 아쇽이 자신에게 했던 대우가 아닌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방식으로 사업체를 경영하는 아쇽은 직원들의 마음을 얻게 되고, 처음 훔친 돈의 15배로 자금을 키우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신분제도와 부정부패가 만연한 인도라는 사회에서 천민 노예 출신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서 발람이 한 방식은 사회를 뒤엎거나, 다른 사회(나라)로 탈출하는 식이 아니었다.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은 브라만이다. 영화의 대사 중 그 브라만이 부처에게 질문을 한다. 당신은 신인가 인간인가. 이에 부처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신도, 인간도 아니다. 난 너희 인간들이 잠들어 있을 때 깨어난 존재일 뿐이다. 발람의 행동들과 영화의 이 대사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의 최상위층인 브라만에게, 깨어날 존재들인 인도의 국민들의 경고로 보이기도 한다. 혹은 잠든 채로 닭장의 닭들처럼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의지가 전혀 없는 인도의 보통 국민들과는 다른, 비록 사람을 죽이고 그 시스템에서 탈출할  첫걸음을 내디딘 발람의 달라진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메시지 같기도 하다. 특히 마지막 장면, 발람의 직원들이 카메라를, 영화를 보고 있는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장면에서는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당신의 삶을 만들어 가면서 살고 있는가? 당신은 당신의 주인인가?를 묻는 것 같다. 만약 이들이 발람처럼, '살인'이라도 감행하고 눈을 뜨고 깨어난 부처가 되겠다고 한다면 공포스러운 것 같다. 흔한 발리우드 영화처럼 현란하고 머리 아픈 음악들이 나오지 않아서 좋았고, 살인을 통해 신분제의 굴레에서 탈출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개척자의 모습이 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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