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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트랙션, 납치된 아들을 쏙 뽑아 구출하라

by 무엇이든 읽음 2021.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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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치 뽑듯 아이만 쏙 뽑아서 구한다

망치 대신 총을 든 토르, 아니 타일러

크리스 햄스워스는 멋지다. 그가 굵은 팔뚝에 아들을 올려 안고 있는 사진 한장은 전 세계 수많은 여인들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고, 내가 헬스장에서 이두근 운동을 미친 듯이 하게 만들었다. 토르로서 크리스는 슈퍼파워 망치를 갖고 싸우지만, 익스트랙션의 특수부대 용병인 타일러는 총, 칼, 주먹으로 싸운다. 그는 젊은 나이임에도 삶을 약간 무욕, 초탈한 자세로 살아간다. 어려운 의뢰를 받아들이고 수행하면서 돈을 벌지만, 그냥 죽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막무가내로 일을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런 덕분에 죽지 않고 계속 임무를 수행해 낸다. 이번에 맡게 된 임무는 마약왕의 아들을 납치한 다른 마약 조직에서 아들을 구해오는 것이다. 마약왕의 세력은 거의 한 국가와 맞먹으며, 탱크, 헬기를 동원하고 국경을 봉쇄해버리기도 한다. 이리저리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모면하면서 마약왕의 아들과 탈출하던 중, 그에게 임무를 의뢰한 사람은 돈이 없고, 타일러가 탈출시키는 아들을 가로채려는 속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들과 함께 다니게 되면 돈을 못 버는 것은 물론, 둘이라서 위험도 더 커지는 상황이었다. 팀과 다른 사람의 만류에도 아이를 구출해 함께 탈출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타일러는 자신을 공격했던 사주를 엄호해 주고, 아이가 탈출할 수 있도록 돕기로 한다. 사주는 사주대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는데, 그의 두목이 사주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아이를 납치해 오라는 협박을 한 것이었다. 결국 사주는 아이를 하기 위해서 끝까지 싸우다가 죽게 되고, 팀은 아이를 안전하게 구해낸다. 아이는 안전한 상황에서 생활을 보내고 있다. 

저 팔뚝은 세상 모듯 것을 지켜줄 것 같다

아저씨는 늘 용감했어요?

타일러와 함께 탈출하던 중 아이는 묻는다. 아저씨는 늘 용감했어요? 타일러는 자신은 용감하지 않다고 한다. 아이는 '사람들을 구하잖아요'라며 타일러의 마음을 건드린다. 사실 돈을 보고 시작한 구출 미션이지만, 더 이상 돈을 받을 길이 없는 타일러가 아이를 끝까지 구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아이와 나누는 이런 대화에서 교감하게 된 타일러는 그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아이는 언젠가 강에 떨어졌다고 죽는게 아니라 물에서 나오지 않아서 죽는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영화의 처음에 타일러는 호수 바닥에 깊게 가라앉은 채로 명상에 들어가 있었다. 그 안에서 끝까지 있었다면 타일러는 익사했겠지만, 물 위로 올라오고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아이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장면에서도 역시 수영장에서 고개를 내밀고 물 위로 올라온 아이의 시야에 타일러처럼 보이는 어떤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한다.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면 이 남자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의 엔딩 부분이니 아이는 당연히 구출된 후지만, 고개를 들어 타일러를 만나지 않았다면 구출 자체, 즉 생존조차 못했을 것이라는 엉뚱한 해석도 해 볼 수 있었다. 

 

기억되기 어려운 용병의 삶

타일러가 아이를 구출하고 마음속의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타일러의 막무가내 작전에는 림프종으로 잃은 아들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아무리 특수부대 출신의 불사조 같은 용병이라고 해도 목숨을 초개처럼 걸고 행동할 필요는 없을 텐데, 게다가 자신이 의사도 아니고 병에서 아들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그렇게 가볍게 여기고 미션들을 수행한다는 것은 개연성이 좀 떨어졌다. 오직 돈만을 위해서 팀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지만, 위험의 최전선에서 몸으로 뛰는 것은 타일러 혼자다. 아이를 구해내는 영웅의 모습보다는 아들에 대한 죄책감을 목숨을 걸면서 잊어버리려 몸부림치는 고통받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름 없는 용병이기 때문에 죽어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고, 이것이 그의 죄책감에 대한 처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사람에게 결국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하는 죽음만큼 두려운 처벌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결국 아이를 구출해내서 그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그의 행동이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인한 죄책감을 없애줄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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