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얼굴의 흉터마저 아름다웠다. 켄신.
도서대여점이 있던 중학생 시절, 날 포함한 친구들이 환장하고 봤던 만화 중 하나 '바람의 켄신'이 코믹북에서 애니메이션, 그리고 실사판 영화로 출시되었다. '바람의 켄신'은 막부 말기를 닫고 메이지 유신을 열어가며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던 전설의 발도재 히무라 켄신의 이야기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여왔기에 칼날을 반대로 써서 살인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굳은 뜻의 역날검은 사춘기 남자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메이지 12년, 1879년이 배경이란 사실은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그간 수많은 실사 영화들의 망작을 봤기 때문에 '바람의 검심 더 파이널'의 전편인 '바람의 검심 - 교토 대화재편'을 보면서 걱정을 했었다. 일본 실사 영화의 망작들의 예로는 테라포머, 드래곤볼 등이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망쳐질 까 봐였다. 그러나 '교토 대화재편'에서 주인공들의 싱크로율을 보면서 이런 걱정을 접어둘 수 있었다. 특히 켄신 역의 '사토 타케루'는 원작 켄신이 자기 손으로 참혹한 과거를 만들면서 살아가 과거의 무게에 눌려서 살아가는 켄신의 분위기를 얼굴에서 잘 피어내고 있었다. 싱크로율로 따진다면 두 번째로 만족스러운 캐릭터, 시시오(후지와라 타츠야)가 있으나 그는 교토 대화재편에 등장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하늘이 벌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처단하겠다. 인벌.
'더 파이널'의 메인 빌런은 켄신의 처, 토모에의 동생 즉 켄신의 처남인 유키시로 에니시다. 에니시의 누나인 토모에의 원래 약혼자(키요사토 아키라)를 켄신이 죽였지만, 그를 사랑하게 된 토모에의 명대사 '당신은 정말로 내리게 하는군요. 피의... 비를...'은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약혼자를 죽인 켄신을 사랑하게 된 토모에는 '이 사람은 나에게서 행복을 빼앗아간 사람. 그리고 또 하나의 행복을 준 사람.'이라는 말도 했는데, 당시에 이 대사 때문에 온몸에 닭살이 돋았던 기억이 난다. 아키라와 켄신의 대결에서 아키라는 켄신의 뺨에 상처를 남기고, 훗날 켄신의 칼에 토모에가 절명할 때, 그녀의 단도가 날아가서 켄신의 뺨에 십자가 모양의 상처를 남기게 된다. 이런 작은 에피소드들은 '바람의 켄신'이 얼마나 치밀하게 짜여 있는 스토리 위에 작화된 만화인지를 알게 해 준다. 에니시는 누나가 켄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를 막다가 그의 칼에 절명한 사실로 켄신을 원망하며 청나라로 건너가 거물 범죄자(?) 무기상이 되어 돌아온다. 하늘이 그를 벌하지 않는다면, 천벌이 아닌 본인이 직접 벌을 내리겠다며 복수를 시작한다.
촉촉한 스토리 드라마, 액션이 줄어들어라도...
바람의 검심은 94년 당시 처음 출간된 후 99년에 완간될 때까지 거의 30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흑백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만화책을 보면서, 검은색으로 칠해진 피를 보면서 그 참혹한 살해(!) 현장을 상상하고 부르르 떨었던 기억도 있다. 이 만화에서 칼싸움 액션을 빼면, 비극과 드라마가 남는다. 영화로 실사화된 원작을 보면서 원작보다 조금 줄어든 액션을 보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만화책에는 검은색으로 그려진 핏빛 액션이 진짜 핏빛 색깔로 화면에 담긴 것을 보면서 액션에 대한 아쉬움은 금세 사라졌다. 만화의 네모칸 안에서 보던 주인공들의 표정, 토모에의 무표정한 얼굴, 그러나 켄신을 바라볼 때의 그 미소는 지금도 그 느낌이 떠오를 정도로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장면을 표현한 아리무라 카스미의 모습이 되려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어릴 때 마음으로 그렸던 그 미소를 아리무라 카스미의 연기에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액션이 줄어든 것은 실사화된 영화에서 충분히 증폭되었으나, 만화의 컷과 컷 사이를 상상으로 채웠던 공백을 실제 배우가 채우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인가 싶다. 그간 폭망한 실사화 영화들로 일본 영화에 대한 기대를 거의 0으로 만들어두고 이번에 개봉한 '바람의 검심'은 더 파이널 1장, 더 파이널 2장, 더 파이널 3장을 계속 기다리도록 하는 데 성공한 것 같다. 바람의 검심 원작의 곳곳에 숨겨져 있는 드라마들을 잘 풀어서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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