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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더, 단 세명의 등장인물이 끌어가는 철학

by 무엇이든 읽음 2021.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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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학습하여 엄마처럼 영아를 보듬는 마더 로봇

로봇이 아기를 길러낼 때의 그 불편함의 골짜기

마더는 인공 자궁에서 탄생한 아이를 길러내는 보모 역할을 하는 로봇이다. 인공지능을 탑재해서 처음에는 서툴지만, 점차 아이를 돌보는데 익숙해지고, 능숙하게 아이를 케어하기 시작한다. 마치 인간 부모가 아이를 길러본 적이 없어 처음에는 우왕좌왕하지만, 점점 익숙해져서 완전한 부모로서의 역할을 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분명 로봇 마더의 표면은 차가울 텐데, 아이는 로봇을 엄마로 받아들이고, 그 어깨에 기대기까지 한다. 마더는 로봇으로서 목적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는데, 인간이 멸종한 땅에서 새로운 인류의 첫 어머니를 길러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로봇 마더는 철학, 윤리학, 의학 등을 교육하고 시험도 본다. 물론 아이는 창의력을 발휘해 모든 시험들을 잘 통과한다. 이런 과정은 로봇 마더에게는 완벽한 인류의 어머니를 길러내는 프로그래밍의 과정이었으며, 그 과정에 부합하지 못하는 인간은 철저하게 도태시켰다. '잔인하게 혹은 냉혹하게' 불태웠다고 하지 않는 이유는 로봇 마더는 단지 프로그램된 대로 실행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소녀도 여자고, 외부 침입자도 여자다. 남성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의 후반, 소녀가 외부로 탈출하게 되는 동기가 '소년'의 그림이라는 것을 확인한 '마더'가 남자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공지능의 학습 결과로 '남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Uncanny vally. 유쾌하지 않은 골짜기

'벤담의 공리주의'와 '칸트'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이익을 얻는다면, 소수의 희생은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로봇 마더가 딸에게 질문을 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고유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니?'. 딸은 '칸트를 배울 때는 모든 인간에게 행복추구권과 생존권이 있었다'라고 답한다. 서양 철학의 거대한 축인 칸트의 사상은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인식론)',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윤리학)', '나는 무엇을 기원해야 하는가(종교철학)'으로 이루어진다. 딸이 이상적이었던 칸트 철학을 배울 때는 '모든 인간에게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더 많은 사람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결정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의식의 성장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딸은 영화의 후반에서 배아실에 있는 수많은 배아들을 위해서, 자신의 동생들을 위해서 탈출했다가 다시 돌아와 로봇 마더를 총으로 쏴버린다. 그동안 그를 길러내고, 그의 모든 것을 가르쳐준 절대자의 권위에 대항한다. 이는 마치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스스로를 각성하고 동산 밖으로 쫓겨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물론 스스로 그 권위에 대항해낸 딸과, 대항하다가 쫓겨난 것은 천지차이이지만. 마지막 소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엔딩 장면은 새로 태어난 남자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장면과 연결되어 있다. 이 아기를 달래 재우기 위해서 불러주는 자장가는 마더 로봇이 자기를 길러주면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적절한 자장가로 학습된 노래였다. 소녀가 노래를 불러주다가 잠시 멈추는데, 계속해서 같은 목소리로 노래가 이어진다. 소녀가 처단한 마더 로봇은 중앙 AI의 분신에 지나지 않은 안드로이드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마 신인류에게 가장 좋은 어머니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던 AI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고, 상황을 개척할 수 있게 된 소녀가 신인류의 어머니가 될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고 남자아이를 길러내는 선택을 하였다고 본다.

그래서 마더의 목적은 인류의 재건

인간을 아끼끼기 때문에, 파괴적이고, 본능에 따르며, 열등한 인류를 멸망시키고, 신인류를 만들어낼 계획이었던 마더에게 소녀는 프로젝트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의 소녀에게 할당된 번호는 APX03으로 앞서 02, 01이 있었고, 그중 APX02는 소각장에서 사체가 발견된다.  APX01은 후에 소녀와 만나게 된다. 이 역시 마더 로봇이 미리 준비해둔 큰 그림이었지만. 인간의 아이에게 건강을 돌보고, 음식을 공급하고, 교육을 시켜주는 것이 '어머니'의 역할인가? 그래서 특정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 그 아이를 도태시키고 다른 새로운 완벽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 즉 '길러내는' 것이 어머니의 역할인가를 묻는다. '나의 마더'는 직역하면 'my mother'가 맞는 말인데, 영화의 마지막에는 'I am mother'이라고 나온다. '나는 마더다'로 영화의 주제가 바뀌는 순간이다. 양육자로서의 어머니의 역할이 맞는지, 아니면 아이를 그 존재 자체로 보듬어주고, 성장하게 하는 보조자의 역할이 맞는지 부모로서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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